산길 이야기

계룡산 국립공원 산행

송산리 2020. 12. 29. 16:46

2020년 12월 20일(일) 계룡산국립공원 등산길 이야기

코스 : 신원사 ~ 보강원 ~ 연천봉 능선 ~ 등원암 ~ 연천봉 ~ 연천봉 고개 ~ 관음봉 ~ 연천봉고개로 빽 ~ 신원사계곡 ~ 고왕암 ~ 신원사

신원사 대웅전(新元寺 大雄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신원사는 계룡산에 있는 많은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사찰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지었다고 전한다, 신원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차례 다시 지어졌다, 임진왜란 중에 불탄 적도 있으며, 철종 11년(1860)에 건물 수십 칸이 불에 타 없어지자 나라에서 특별히 재물을 지원해 다시 짓기도 하였다, 현재의 대웅전은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을 1906년과 1946년에 다시 고친 것이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세 분을 모셨다, 화려한 팔작지붕에 처마 끝을 살짝 올려 우하함을 더했고, 기둥 사이의 공포 에는 연꽃을 조각했다.

신원사 범종
약 40여년전 신원사 범종제작당시 시주를 했는데 범종에 이름이 올라있다
중악단(中嶽壇 보물 제1293호. 위치 : 계룡산 신원사)중악단은 국가애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3년(1394년)에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년)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년)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 배치와 공간 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중앙단 대문간채
중앙단 조감도
보광원
보광원 약사여래
산길에서만난 먹이사냥하는 딱따구리
등운암(해발 684m)등운암은 1300여년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사찰로 민족의 영산 계룡산의 관음봉, 쌀개봉, 국사봉, 천황봉등 병풍처럼 펼쳐있는 봉우리 중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연천봉 아래에 자리잡고있는 사찰로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신원사의 말사이다.등운암의 유래는 신라 진덕여왕때 경주에 사는 영특한 아이 진광세가 불국사에 출가하여 부설 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오대산을 가던중 구씨의 벙어리 외동딸 묘화가 그를 보고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죽기를 다하여 인연을 맺고자 원하여 자비보살 마음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 등운과 월명 남매를 두었다, 아들 등운은 계룡산 등운암, 딸 월명은 월명암, 묘화부인은 장흥의 보림사, 부설거사는 망해사를 창건 하였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고 풍수지리적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등운암은 세월의 무상함속에 법당은 퇴락하고 협소하여 여래출현 본뜻과 무량중생의 영원한 귀의처가 될 계룡산 등운암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게 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등운암 주지 현문스님 합장-
연천봉 석각(連天峰 石刻)계룡산은 이 지역의 풍수지리적 특징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1393년(태조2년) 신도건설공사 이후부터 풍수설과 어우러진 계룡산은 각종 예언과 연결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연천봉 석각은 계룡산이 갖는 이러한 도참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자원이다연천봉 석각의 의미방백마각(方百馬角) 구혹화생(口或禾生) 방(方)은 4방이요,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80(八十)을 의미한다. 각(角)은 뿔이다모든 짐승은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482란 숫자가 된다.구(口)와 혹(或)은 국(國)자가되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이(移)의 옛글자가 된다.전체를 다시 조합하면‘사백팔십이 국이’란 구절이 되어서 조선은 개국 482년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연천봉에서 바라본 계룡산 정상(천황봉) 전경, 출입이 통제되었다, 우측부터 머리봉 ~ 천황봉(해발 840m)안테나) ~ 쌀개봉이다
연천봉에서 왼쪽부터 삼불봉 ~ 관음봉~ 문필봉(관음봉과 겹쳐보임) ~ 쌀개봉
연천봉에서 관음봉 방향으로 내려선 연천봉고개, 우측으론 갑사방향, 좌측은 신원사방향인 신원사 계곡이다
등산안내도
계룡산 관음봉(해발 766m)
관음봉에서 남매탑코스(자연성능)으로 바라본 삼불봉
동학사계곡, 동학사와 멀리 유성시내가 조망된다
고왕암 옆문
고왕암(古王庵)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중 하나인 신원사(新元寺)의 부속 암자이다.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의자왕의 명으로 창건하였다. <공주읍지>에 따르면 의자왕이 이 암자를 창건하도록 명하였으나 미쳐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당시 당나라 소정방(蘇定方)과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침공하였을 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이곳에 피난하였다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암자 이름을 고왕(古王)이라 한 것도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부터 조선초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429년 서함(西函)이 중건하고, 1928년에 청운(淸雲)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에는 법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