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리 2017. 5. 4. 23:37

년중 사월초파일에만 개방하는 문경 희양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봉암사를 2017년 5월 3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09시30분경 도착해 오후 5시반까지 머물다왔다 

봉암사 입구 일주문(봉황문) 전면 현판

            일주문 후면 현판

   백두대간 문경 희양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봉암사 전경

   경내엔 영가등만 걸려있다

                                봉암시 지증대사탑비(鳳巖寺 智證大師塔碑)

                                국보 제315호(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이 비(碑)는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智證大師 824~882)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신라 경애왕(景哀王) 원년(924)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신라말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지었으며, 글씨는 분황사의 승려 석혜강(釋慧江)이 썼다. 용 모양의 비머리(螕首)와 귀부(龜趺)를 완전히 갖춘 비석으로 귀두는 용두형화(龍頭形化)되었으며 사산비문(四山碑文)으로 널리 알려진 비이다. 지증대사는 속성이 김씨(金氏)이고 호는 도현(道憲)이다. 신라 헌강왕(憲康王)16년(824)에 출생하여 17세에 부석사(浮石寺)로 출가하면서 승려가 되었다. 그가 현강왕8년(882)에 봉암사에서 향년 59세로 돌아가자 나라에서 시호를 지증(智證)이라 하고 탑호를 적조(寂照)라 하는 동시에 탑비(塔碑)를 세우도록 하였다.

                                  봉암사 지증대사탑(鳳巖寺 智證大師塔)

                                  보물 제137호(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

이 탑에는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智證大師 824~882)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이 탑은 신라 헌강왕(憲康王)8년(882)에 세워졌으며, 여러장의 판석(板石)으로 짜여진 방형의 지대석 위에 각부의 장식 조각이 섬세하고 수려하게 제작되어 신라 사리탑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탑의 높이는 3.42m, 지대석 너비 2.28m의 당당한 탑이다, 지증대사는 경주김씨로 17세에 부석사(浮石寺) 경의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헌강왕 7년(881)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봉암사로 들어와 이듬해인 동왕 8년(882)에 세상을 떠났다, 헌강왕은 대사의 시호를 지증, 탑호는 적조라 내렸다.

 봉암사에서 계곡을따라 20여분 올라가면  마애불리있다 해마다 불 앞에 천막을 쳤는데 오늘은 천막이 없어 전경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마애불 뒤편 계곡에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백운대"

                                                      명상에 졎어있는 스님과 신도의 모습이 아름답"

        올해도 또 그렇게 그리다 왔다